고피난다 15-10-13 347
‘접 接’은 ‘접촉을 갖는다’는 뜻이다.
참여의 뜻이 이미 이 글자에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자기 자신과 접촉을 갖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들 대부분은 자기 자신과 접촉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을 잊기 위해 종교, 정치, 운동, 책과 같은 다른 것들과 접촉을 갖는다.
자유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우리는 어떤 다른 것을 우리 안에 초대한다.
텔레비전에게 우리 자신을 열어 그것이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를 지배하게 한다.
그러므로 ‘접촉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각자 안에 있는 지혜와 이해와 자비의 근원을 발견하기 위해
자기 자신과 접촉함을 말한다.
자기 자신과 만나는 것이 곧 명상의 의미다.
그것은 그대 몸 안에서, 그대의 느낌 안에서, 그대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접’의 첫번째 의미다.
‘접’은 또한 이해와 자비가 완전해진, 깨달음을 얻은 존재와 접촉하는 것을 뜻한다.
자신과 접촉한다는 것은 곧 그러한 지혜와 자비의 근원과 만나는 것이다.
‘접’의 두번째 의미는 어떤 것이 더 오래 지속되도록 ‘계속하는 것’이다.
즉, 수많은 붓다들에 의해 시작된 이해와 자비의 활동을 지속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오직 우리가 자신의 ‘참 나’와 접촉할 때만 가능하다.
마치 생수의 근원에 도달할 때까지 땅을 깊이 파들어 간후에야
우물이 채워지는 것과 같다.
참된 마음과 접촉할 때, 이해와 자비의 근원이 솟아 나온다.
이것이 모든 것의 출발이다.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이들의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참 나’와 만나야만 한다.
「틱낫한의 평화로움」 중에서...